당구

11/15/2019

Dara Sedaka - Angel Queen


1982년작 극장판 1000年女王(1000년여왕)의 엔딩곡으로 미국의 유명 Singer & Songwriter인 Neil Sedaka의 딸이 불렀습니다.

1980년대에 MBC에서 이른 아침에 1000년여왕 TV 시리즈를 방영했었는데, 이 작품이 의외로 성인향 애니메이션이라서 미방영분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작품의 슬픈 스토리는 銀河鉄道999(은하철도999)와 宇宙海賊キャプテンハーロック(우주해적 캡틴 하록)으로 이어집니다.



1000년의 공전 주기를 갖는 행성 ラーメタル(라 메탈)은 1000년에 단 한번 태양에 접근하여 봄을 맞이하기에 ラーメタル 행성인들은 지구인들을 제거하고 지구에 거주하며 영원한 봄을 얻고자 합니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행성 ラーメタル의 공전 궤도는 태양계를 구성하는 지구를 비롯한 다른 행성들의 공전 궤도와는 달리 원일점과 근일점의 차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그러나 1000년여왕으로서 지구에 살고 있던 雪野弥生(유키노 야요이, 본명: ラー・アンドロメダ・プロメシュームプロメシューム 라 안드로메다 프로메슘)는 1000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지구인들을 지켜보는 동안 그들을 사랑하게 되어 지구인들을 위해 결국 ラーメタル 사람들과 싸울 것을 결의합니다.

지구를 지켜낸 그녀는 행성 ラーメタル로 돌아가 1000년여왕으로서의 인생을 살며 훗날 쌍둥이 딸을 낳게 되는데, 그녀들이 바로 エメラルダス(에메랄다스)와 メーテル(메텔)입니다.


영원의 봄을 잃어버린 행성 ラーメタル의 강렬한 추위에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1000년여왕 プロメシューム(프로메슘, 유키노 야요이)은 스스로 기계의 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행성 ラーメタル의 사람들이 자신을 따라 모두 기계인간이 되기를 바랬던 것이지요. (행성 ラーメタル의 사람들이 또다시 지구를 침략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던 바램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정치적 계략에 빠져버린 그녀는 기계인간 시술을 받던 중에 따스했던 마음이 제거되고 인격이 붕괴되어 그 결과 악의 화신이 되고 맙니다.

그 당시 어렸던 エメラルダス와 メーテル 쌍둥이 자매는 언젠가 어머니를 구해내겠다고 결의하고 행성 ラーメタル을 떠나게 됩니다.


시간은 흘러 행성 ラーメタル 사람들은 모두 마음을 잃어버린 기계인간이 되어 있었고, 1000년여왕이자 우주의 지배자 그리고 악의 화신이기도 한 어머니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행성 ラーメタル로 귀환한 エメラルダス와 メーテル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을 깨닫게 됩니다.

メーテル은 어머니 プロメシューム에 의해 1000년여왕의 지위를 물려받도록 명령을 받게 되지만 이를 거부하고 결국 시간을 초월한 여행을 떠나게 되며, 여행을 통해 여러 동행자를 만나게 되고(그들은 모두 プロメシューム에 의해 생명을 빼앗깁니다) 최후의 동행자 星野鉄郎(호시노 테츠로; 국내명 철이)와의 인연이 형성됩니다.

언니 エメラルダス 또한 クイーン・エメラルダス号(퀸 에메랄다스 호)의 선장으로서 ハーロック(하록)과 함께 우주를 떠돌며 어머니 プロメシューム에 저항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래 영상은 2004년에 방영된 宇宙交響詩メーテル 銀河鉄道999外伝(우주교향시 메텔 은하철도999 외전)의 오프닝입니다.


이 작품은 メーテル과 동행자 ナスカ(나스카)와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メーテル이 星野鉄郎와 만나기 이전의 스토리입니다.



1980년대 당시 MBC에서 방영했던 1000년여왕 TV 시리즈의 오프닝곡을 김국환씨가 불렀는데, 김국환씨의 곡이 Youtube에 있기에 링크해봅니다.

11/05/2019

양자 역학적 세계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因果律에 저항하며 世界線을 넘나드는 어떤 과학자의 純情을 문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양자 역학적 세계관을 변환한 곡입니다.



우리가 사물의 존재에 관해 논하기 위해서는 관찰 주체(관찰자 또는 관측자)와 더불어 변화량을 特定할 수 있는 절대적 규준이 되는 물리량이 필요하다고 믿어왔습니다.

그 물리량을 우리는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전자기학을 연구하던 수많은 과학자들이 시간의 절대성에 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결국 시간이 절대적 물리량이 아니라는 것이 Einstein의 철학적 사고를 통해 증명되기에 이르렀고, 이때까지 거시 세계를 해석하는 물리학의 근간이었던 Galilei & Newton의 사고 체계를 근본부터 흔들어버리게 됩니다.

즉 거시 세계를 해석하는 역학 체계의 변혁을 가져옵니다. (Galilei & Newton의 사고 체계가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오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이와 더불어 전자기학자들도 시간이라는 물리량(빛)에 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독자적 물리 체계를 도출하게 되고 관찰자(관측자)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양자 역학입니다.

그 결과 관측이란 意識을 가진 존재가 "대상을 認識하는 것"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물체나 事象은 "관측" 됨으로써 성립된다는 사고 체계가 만들어집니다.

이 말은 가령 누구에게도 관측되지 못한 경우, 누구에게도 그 존재가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곳에 그 무언가가 있다 하더라도 "존재한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 역도 성립합니다.)

좀 더 확장하면 누군가가 "없는" 것을 "있다" 라고 認識하게 되면 실제로 그 무언가가 존재해버리게 된다는 역설(paradox)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역설을 神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자들이 사용하고 싶겠지만 "없는 것을 있다라고 認識한다"의 조작적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이상 그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그들이 幻想과 認識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이것을 현대 물리학에서 Heisenberg의 "불확정성 원리"라고 합니다. (제가 과학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히 설명했을 뿐, 이렇게 간단한 논리는 아니라는 점을 밝힙니다.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운동량을 지닌 미시적 입자의 존재와 이를 관측하는 방법론을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좀 이해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새로운 인식론의 등장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구조를 해석하는데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버렸습니다. (그 가능성에 대해 여러분도 주변에서 익히 들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윗 곡의 가사 속에도 그 의미가 들어 있고요.)



여러분도 수학 시간에 "발산"과 "수렴"이라는 것을 배웠을겁니다.

수열로부터 공비의 규칙성을 찾아내어 무한급수 일반식을 도출하고 일반항을 특정하여 그 조건에 맞게 계산하는 단순한 문제 풀이의 스킬로써 학습했지 이것이 세계의 구조를 認識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배운 사람은 아마도 없을겁니다.

뿐만 아니라 "복소수"를 구성하는 "허수"라는 개념이 시간이라는 물리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수학 교사 또한 아마 없었을 겁니다.

아마 수학 교사들도 이런 교육의 문제점을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서 수학이 지닌 의미를 가르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학창시절에 우리는 수학을 단지 입시의 도구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극단적으로 "일상 생활을 하는데 수학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돈 계산만 할 수 있으면 되지" 라는 논리가 형성되어 수학의 의미를 부정하는 사태까지 발생합니다.

현재와 같은 교육 현실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킬 과학자나 수학자 등의 존재가 대한민국에서 등장할 수 있을까요?



저는 윗 곡의 가사 중에서 "孤独の観測者 (고독한 관측자)" 라는 부분을 좋아합니다.

孤独의 사전적 의미 중에서 "홀로이기에 외롭다" 라는 의미가 가장 대중적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孤独의 핵심은 "외롭다"가 아니라 "홀로", 즉 "나를 제외하고는 세계에 그 어떤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홀로"인 그 어떤 자가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홀로"된 그 어떤 자를 관측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세계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Descartes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를 통해 "홀로"된 자가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이라는 그 과정이 "홀로"된 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양자 역학적 세계관이든 문학적이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외로움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홀로"가 아닙니다.

즉 여러분은 孤独하지 않기에 외롭지도 않습니다.

혹시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虚像이며, 단지 심리적 원인으로부터 기인한 감정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To my Dearest




- To my Dearest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당신에게) -

フランシュシュ



さよならはやってくるけれど
이별은 (언젠가) 찾아오지만

ずっと先だって思ってた
(아직) 한참 후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照れくさくて言えなかった言葉も
부끄러워 할 수 없었던 말도

伝わらないまま消えてった
전하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네요

でもね
그래도

一緒に居られた日々の中で私は心から
함께 했던 나날 속에서 저는 진심으로

笑ったり 泣いたり 笑ったり
웃고 울고 (또) 웃었답니다



たくさんの温もり 与えてくれた
(당신은 내게) 많은 따스함을 주었어요

大きな優しさ 教えてくれたの
커다란 상냥함을 (내게) 가르쳐 주었어요

この胸に空いた隙間は 埋まらないけど
이 텅빈 마음의 틈새는 메울 수 없겠지만

今も 今も 暖かくて
(그래도) 지금도 지금도 따뜻하답니다



いつの日も 会いたいよ 会いたいよ
언제라도 만나고 싶어 만나고 싶어

そんな気持ち 消えないけれど 大丈夫
그런 마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괜찮아요

愛は 愛は ここにあるよ、いつまでも
사랑은 사랑은 여기에 있어요, 언제까지나



神様に言いたいことは
신께 말하고 싶은 것은

出会わせてくれて ありがとう
(당신을)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요

あなたに見せていたい笑顔のままで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미소 띤 얼굴 그대로

思い出を抱いて歩いて行こう
추억을 안고서 걸어가요

でもね
그래도

楽しかったこと嬉しかったこと溢れだすと
즐거웠던 일 기뻤던 일 넘쳐 흐르면

泣いたり 笑ったり 泣いたり
울고 웃고 (또) 울었답니다



もう二度と会えなくなって
두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서야

やっとちゃんと気づいたの
겨우 깨달았어요

あのね 本当にね
저기... 정말로

幸せでした
행복했습니다



あなたといた世界 あなたのいない未来
당신과 있던 세계 당신이 없는 미래

遠くへ離れて 行くけれど
저 멀리 멀어져가지만

もらった勇気を 誇りに進むから
(당신에게) 받은 용기를 긍지로 삼아 나아갈테니

ずっと ずっと 見守っててね
계속 계속 지켜봐줘요



これからもう 会えなくて 会えなくて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어도 만날 수 없어도

だけど強く光る 思い届くと
그래도 힘차게 빛나는 마음이 닿는다면

願い 歌い
소원을 노래해요



いつの日も 会いたいよ 会いたいよ
언제라도 만나고 싶어 만나고 싶어

そんな気持ち 消えないけれど 大丈夫
그런 마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괜찮아요

愛は 愛は 変わらないよ、いつまでも
사랑은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언제까지나



会いたくて 会いたくて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いつか夢で また会えたら
언젠가 꿈 속에서 다시 만난다면

ちゃんとほめてね
꼭 칭찬해줘요